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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봅시다(집필 중)/55살 연상녀와의 동거 고백

[Part 1] - 내가 쉬는 날은 곧 무릉도원이었다(2)

[Part 1] - 내가 쉬는 날은 곧 무릉도원이었다(2)

당신도 연상이 만들어준 무릉도원이 있었는가, 그렇다면 이제는





, 그 이벤트는 바로 방학이다.


나도 방학이 있었으면 좋겠다.


필자의 또 다른 연상녀인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이다.


고등학교, 대학교 방학 기간에 안성 부모님 집에 가서 어머니가 출근하실 때 거실에 누워있으면 줄곧 위 말씀을 하시곤 했다.

 



내가 쉬는 날엔 무릉도원이 생겼다


1 겨울방학 때 한 가지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안성에서 중학교 때부터 정말 친한 친구가 있었는데 겨울방학 거의 한 달 동안 그녀의 집에서 지냈었다.


그 친구에게 가정적으로 문제가 있었거나 한 것이 아닌,

오로지 내가 방학이라 그 당시에 하던 게임을 매일 같이 하며 놀자고 초대한 것이었다.


정말 철이 없지 않은가.


아래 당시 상황을 살펴보면 필자가 불친절하고 나쁜 손자 놈'이란 수식어를 왜 그렇게 강조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방학 기간 내, 학원을 가야 하는 날이 정해져 있었다.

이 친구는 홀로 집에 있었고, 할머니가 노인정 등에서 귀가 후 밥을 차려준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내가 학원을 마치고 집에 올 때 즈음 이 친구가 배웅 나와서 같이 집에 들어가곤 했다.


학원을 가지 않는 날에는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컴퓨터를 켰다. 잠시 후 할머니가 밥 먹으라며 부르곤 했다.

우리는 아침 식사를 하고 밖에 나가서 놀고 들어오면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 등의 따뜻한 저녁이 차려져 있었다.


돌이켜 생각하니 이 친구도 참 대단하다. 그 당시 나이에는 저렇게 철이 없는 건지, 그냥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치부하면 될 거 같다.(웃음)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그런데 고2 때부터 학교 적응해서인지는 몰라도 놀토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는 방학이 참 지겨웠고,

슬슬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정말 기적이라고 생각한다. 저 생활을 지속해왔다면 참.. 내 앞날이 깜깜했을 거다)

 

‘빨리 방학이 끝나고 학교에 가면 좋겠다.

 

‘학교 가서 친구들과 얘기하고, 선생님과 애들을 웃겨주고 싶다.

 

이러한 생각이 날마다 계속 들었다.


아마 이 글을 보고 배부른 소리다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런데 본인은 내가 주체가 되어 남을 즐겁게 하는 행위에 대해 희열을 느낀다지금까지.


아마 저 학창 시절의 영향이 큰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도 어떻게 나만의 필살기로 남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웃음을 줄 수 있을지, 매일 생각하고 고민한다.




이제 내 무릉도원은 없다



아무쪼록 내가 쉬는 날은 정말 무릉도원이라 말해도 될만한 곳이었다.


그런데 그 무릉도원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여러분에게 한 번 묻고자 한다. 본인이 고2 즈음 정말 운이 좋게 정신을 차려서 없어진 걸까?










(중략)


"이 마을에 대해서는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아 주시오."


어부는 마을을 나와서 원래 장소에 있던 배를 타고 오면서


도중에 표시가 될 만한 곳을 여기저기 눈여겨보며 자신의 마을로 돌아왔다.


그리고 마을 관리에게 자초지종을 보고했다.


관리는 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어부에게


부하를 동행시켜서 마을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복숭아꽃이 만발해 있는 그 평화로운 마을은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중국 4세기 무렵의 이야기, 도연명의 도화원기 中




아니라면, 위 무릉도원에 관련한 이야기처럼 '이 마을(할머니네)'


다른 사람에게 절대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말하고 초대까지 해버려서 그런 걸까?




말하지 마시오 (ㅇㅋ)




“우정님(82)

 

정답은 그녀가 아프기 때문이다.


아픈 그녀는 현재 이름 옆에 "82"라는 큰 숫자를 달고 있다.


당시를 기준으로 '10'이나 더 큰 숫자다.


그녀의 이름 옆 숫자가 10까지 커짐에 따라 그녀의 아픔도 같이 커졌다.


"직위든, 부든 간에 커지면, 그에 따른 혜택과 아울러 책임져야 할 것 또한 커진다"라고 하는데,


난 이 말에 '나이'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책임져야 할 것(아픔)만 커지고, 혜택은 커졌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
(
나이 듦을 더 강한 무기로 이용할 수 있어진 게 더 커진 혜택일지도)



1. 허리 아픔 - 가만히 있어도 계속 통증이 와서 누웠는데 그래도 아픔.


2. 손 떨림 - 파킨슨 병이라고 한다. 식사를 하거나 그저 가만히 있어도 손이 떨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음.


3. 우울증 -외롭고, 그냥 눈물이 남.
(
이 부분은 다시 다루도록 하겠다)


4. 발 저림 - "저리다"라는 말의 뜻대로 피가 잘 통하지 못하여 뼈의 마디나 몸 일부가 쑥쑥 쑤시듯이 아픔.



그냥, '가만히 숨만 쉬어도' 아픈 상태이신 거 같다








세월이 흐르며 아픔이 커짐에 따라 위의 () 혜택을 안겨줬고자연스럽게 나의 무릉도원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니 그녀는,


나의 고등학교 방학과 같은 나날ㅡ학교에 가고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데 맘처럼 쉽지 않아서 지겹기만한ㅡ을 4년째 맞는 중이었다.

(4년이란, 노인정이 아예 문을 닫은 시간을 일컫는다.)


또한 내 밥을 차려줬던 지난날과는 다르게,


그녀는 현재 본인의 밥도 잘 챙겨 먹지 못한다.


그녀가 만들어준 '' 무릉도원은 사라졌다, 그치만 이제 내가 도리어 '그녀의' 무릉도원을 만들어줘야 된다고 생각한다.




불친절한 놈의 두 번째 물음,


“당신은 당신의 연상이 만들어준 무릉도원이 있었는가”




있었다면 이젠 당신이 만들어 줄 차례라고, 이 나쁜 손자 놈이 늦은 후회를 하며 감히 건네본다.





부모들이 우리의 어린 시절을 꾸며 주셨으니

우리는 그들의 말년을 아름답게 꾸며드려야 한다.


-생텍지베리-


 






사족1: 흥미로운 것은, 생각은 참~ 쉬운데 매번 행동이 따라주질 않는다는 것. 의도는 좋은데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 그래서 고백하려는 불친절한 손자 놈의 이야기.

투 비 컨티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