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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봅시다(집필 중)/55살 연상녀와의 동거 고백

[Part 1] - 새 식구(feat. 나쁜 손자 놈)


어느 날, 불편한 손님이 찾아왔다, 그녀의 집에 

 

 

때는 필자의 고2 여름방학으로 기억한다.
난 그녀의 집에 새 식구를 데려왔다,

 

강제로.

 

사건의 시작

 

부모님이 계신 안성 집에서 며칠 쉬러 갔었는데, 가니까 집 베란다에 반려견 두 마리가 있는 거 아닌가.

이내 나의 또 다른 연상인 아버지께 여쭤봤다.
여쭤보니, 아는 분에게 받아왔다고 하셨다.

(참고로 아버지께서는 예전부터 주변에서 개를 종종 데려오시곤 했다.)
애들 생김새를 보아하니, 전 주인이 남다른(?) 애정을 갖고 키운 게 느껴졌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당시 이렇게 생겼다.


 

 

 

머리와 몸통의 털이며 가위로 잘랐다고 하는데 마치 초가집의 짚처럼 삐죽삐죽 튀어나온 모양새였다.
베란다에 있는 두 마리의 개는 자기들을 꺼내 달라고, 관심 좀 달라고, 베란다 문 앞에서 점프를 뛰며 긁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내 눈에 띄는 친구가 하나 있었다. 다른 한 마리와는 사뭇 다르게 작은 체구를 갖고 있었고, 옆에 개로 인해 기가 죽어 점프도 제대로 못하는 그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아부지 저 쟤 가져가도 돼요?”

 

(‘가져간다’라니. 그 당시엔 반려견을 물건으로 생각한 거 같다)


“그래, 근데 왜 쟤야, 옆에 애가 더 괜찮은데”


“그냥, 제 스타일이에요.”


그렇다, 내 스타일이라는 것.. 위 귀여운 이유에 아울러 암컷이었다.남자 여자 할 거 없이 본능적으로, 아무래도 이성에게 끌리는 걸까?흥미로운 건 반려견을 키우는 주변인 대부분이 본인의 성별과 다른 반려견을 키우더라(웃음)


“근데 어떻게 데리고 갈 거니?”

 

 



 

대강 저런 식으로? 다만 나는 백팩을 앞으로 하고 데려왔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할머니네까지.

 



 

너(희)의 이름은,

 

아, 난 데려오기 전, 이름을 짓고 왔다. 안성에 남아있는 한 마리 또한 말이다.

 

‘아지’, ‘콩이’, 이러한 흔한 이름 말고 – 절대 저 이름이 나쁘다는 건 아니니, 해당 이름의 반려견/묘를 키우는 분들은 오해 없길 바란다 – 뭔가 특징을 살린, 흔치 않은 이름을 짓고 싶었다. 그저, 본인으로 하여금 주변인에게 주목받고 웃음을 주는 게 나의 또다른 ‘병’인지라 말이다.


자세히 보니, 둘 각각의 특징이 있었다.

내가 데려온 한 마리는 귀가 접혀 있었고, 다른 한 마리는 귀가 펼쳐져 있었다.
땅땅땅. 그래서 결국 피나(접핀아 접핀아 하다가 피나)’ ‘치나(펼친아 펼친아 하다 치나)’로 결정다.


나중의 이야기지만,안성에서 키우는 ‘치나’는 얼마 안 가 아버지와 어머니의 뜻대로 ‘콩돌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그녀와의 첫 만남

 

‘삐삐삐 삐 (슥).. 띠리리’


그녀의 집에 도착해 문을 열었다.
열고 보니, 오실 때마다 과일을 가져오시는 할머니가 우리 할머니와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할니~~ 나 왔어. 얘 봐봐. 어떠셔? 귀엽지??"

 

나쁜 손자 놈은 할머니가 좋아하실 거라는 기대감에 들뜬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말했다. 그런데

 

 

“아니, 저게 뭐야. 뭐 저렇게 못난 걸 데려왔어.”

 

 

라며 말씀하시는 게 아닌가. 다소 충격이었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내가 그녀 입장이었어도 저 말을 했을 것이다. 그때의 피나는 참 못생겼기에)

 

“에이- 왜 귀엽잖아요, 귀엽기만 한데 진짜..? 안 그래요 할머니?”

난 옆에 계신 다른 할머니께 여쭈었다.


“그러네(웃음) 그런데 쟈를 어떻게 데려왔댜?”


“여기에 쏙 넣어서 데려왔죠, 이름은 피나에요”


그러자 그녀가 하는 말,

“피나?? 뭔 피가 난다는 거 같냐. 쟤 어떻게 키우게 어휴 똥 치우고, 밥 먹이고 다 할 수 있어? 못하지 저거”


“걱정을 하덜덜 마세요. 얘랑 같이 있으면 할머니, 노인정 안 갈 때도 집에서 안 심심하고, 어디 나갔다 왔을 때도 반겨주고, 어휴, 이런 복덩이가 어딨어요?”


그러자 그녀 나의 설득에 눈 하나 깜박 안 하고,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저런 걸 왜 보냈냐고 몇 분을 따지셨고, 이내 어머니와도 또 통화를 해서 하소연을 하셨다.

 

 

 

 

 

그땐 그랬지

 

10년이 지난 지금, 피나와 콩돌이는 아래 사진처럼 반려견 다운 미모가 됐고, 어느새 할머니의 나이와 비슷해지고 있다.

 

나보다 내집마련을 빨리 한 피나.

 

(좌)털과 살 둘 다 찐 피나 (중)부모님이 계신 안성에서 살고 있는 콩돌이 (우)최근 피나와 콩돌이_여전히 각각 귀가 접히고, 펴져있다.





그리고 본인은 할머니의 우려와는 다르게, 대소변 모두 잘 치고, 밥도 잘 주고 있는 지금이다.


무엇보다 요즘은 그녀가 더 피나를 아낀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침대에 절대 못 올라오게 하고, 올라오면 큰소리치고, 먼저 아는 척 안 하고 옆에 피나가 자는 건 상상도 못 한 일인데 요즘은 어떤지 아는가?
침대에 올라오면 칭찬해주고, 병원이든 어딜 나갔다 오신 후,  피나가 반기면 ‘자식보다 낫구나’하신다. 본인이 피나에게 백내장 약을 손수 넣어주고, 사료도, 배변도 처리하신다. 심지어 같이 잠을 청하는 걸 볼 때면 정이 무섭구나 하고 느낀다.

 

 

 

새파랗게 어린놈과 나이 많은 그녀와 개

재밌는 조합

 

자. 정리하면 55살 연상의 그녀의 집에서 그녀와 나, 그리고 이제 그녀와 나이가 비슷해지고 있는 반려견 한 마리가 동거를 하는 것이다.


작년 여름 즈음이다,

이렇게 셋이서 큰마음을 먹고 그녀의 자식, 그리고 며느리가 있는 안성으로 가고자 택시를 타고 터미널로 가는 차에

 

“어휴 그렇게 셋이서 살고 계시는 거예요? 재밌는 조합이네요? 껄껄!”

 

라고 택시기사님이 그녀에게 말하는 게 아닌가.


재밌는 조합일까? 한 번 판단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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